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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novel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매일 한 편씩 이메일로 독자들에게 글을 보내는 〈일간 이슬아〉로 그 어떤 등단 절차나 시스템의 승인 없이도 독자와 직거래를 트며 우리 시대의 대표 에세이스트로 자리잡은 작가 이슬아, 그가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제목은 ‘가녀장의 시대’. 〈일간 이슬아〉에서 이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이슬아 작가가 만든 ‘가녀장’이란 말은 SNS와 신문칼럼에 회자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은 가부장도 가모장도 아닌 가녀장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할아버지가 통치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가정을 통치한다. 개천에서 용 나기도 어렵고 자수성가도 어려운 이 시대에 용케 글쓰기로 가세를 일으킨 딸이 집안의 경제권과 주권을 잡는다. 가부장의 집안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아름답고 통쾌한 혁명이 이어지는가 하면, 가부장이 저질렀던 실수를 가녀장 또한 답습하기도 한다. 가녀장이 집안의 세력을 잡으면서 가족구성원1이 된 원래의 가부장은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음으로써 아름답고 재미있는 중년 남성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 가부장은 한 팔에는 대걸레를, 다른 한 팔에는 청소기를 문신으로 새기고, 집안 곳곳을 열심히 청소하면서 가녀장 딸과 아내를 보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가부장제를 혁파하자는 식의 선동이나 가부장제 풍자로만 가득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녀장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신을 키우고 생존하게 한 역대 가부장들과 그 치하에서 살았던 어머니, 그리고 글이 아니라 몸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해 생각한다. 슬아는 그 어느 가부장보다도 합리적이고 훌륭한 가녀장이 되고 싶어하지만, 슬아의 어머니 복희에게도 가녀장의 시대가 가부장의 시대보다 더 나을까? 슬아의 가녀장 혁명은 과연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가세를 일으키려 주먹을 불끈 쥔 딸이 자신과 가족과 세계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이슬아의 소설은 젊은 여성들이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며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혁신과 서사를 만들어내는 요즘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소설 속에서 이슬아는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들의 집에는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저자
이슬아
출판
이야기장수
출판일
2022.10.07

 

칼럼을 통해 알게 되고 작품을 사서 읽으면서 팬이 된 작가. 이슬아 작가의 글은 가벼운데 무겁고, 진지한데 날 것 같다. 

이미 작가님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 있었기 때문에 가녀장의 시대는 소설보다는 자전적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쓰게 된 작가님의 의도가 현실이 되어 가녀장의 시대를 영상으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23p

"뭐 쓸지 생각 안 나면 어떡해요?"

슬아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대답한다. 

"대체로 그래······"

할말이 없어진 철이가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괴롭겠다······ 대박······"

슬아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린다. 

"무슨 일을 해도 괴로운 건 마찬가진데······"

그러다가 철이를 돌아본다. 철이의 빡빡머리와 완벽한 두상을 응시하며 슬아가 말한다. 

"잘하고 싶은 일로 괴로우면 그나마 낫잖아."

 

개발자로 살고 있는 나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을 만나 미소를 지었다. 

매일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는, 내 생각대로 안 되는 일이 99%이고 하루에 한 번이라도 작은 성취를 느끼면 만족한다. 

티비에서 김미경 강사가 강연 때 얘기한 적이 있다.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일은 강의를 하는 것.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일은 강의를 준비하는 것. 

일, 직업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156p 

"하지만 제일 중요한 우정인걸. 자기 자신과의 우정 말이야."

미란이가 멍을 때린다. 잠자코 있다가 묻는다. 

"너는 너랑 잘 지내?"

슬아는 대답한다. 

"상사처럼 대해."

"왜?"

"상사가 없으니까."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엄격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일을 완성할 수가 없어."

"그래서 스스로 상사가 된다고?"

"자신을 너무 풀어주지 않는 거지."

"그게 자신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거야?"

"좋은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유능한 상사처럼 나를 대한다는 얘기야."

 

책을 10권 이상 내고 가녀장으로 살고 있는 일잘러 작가의 비기가 나오는 문단.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니까, 스스로 일을 구해서 하는 프리랜서 작가니까 저런 게 필요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책임감, 일을 잘하는 것, 오랫동안 잘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무리가 없는 일은 없다. 마무리에 대한 책임의 크기가 다를 뿐 어떤 위치에서 일을 하더라도 일은 완성이 되어야 하고. 

일을 한 사람에게 어떤 수준에서든 보상이 따라야 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긴 세월 동안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복지 혜택도 받아야 하고 

그 혜택에 대한 방법도 고민하는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63.

마감을 대하는 자세. 

 

이 책이 좋은 책이기를. 자신이 쓰고 만든 게 부디 좋은 것이기를.

맘놓고 낙관하기에는 슬아는 책에 관해 너무 많은 세부사항을 알고 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부분이 끊임없이 생각난다. 그는 한숨 쉬며 중얼거린다. 

"폴 발레리가 그랬어요."

복희는 폴 발레리가 누군지 모르지만 묻는다. 

"뭐라고 했는데요?"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대요.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래요······"

 

자신의 창작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순간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내 생각보다 결과물이 안 나와서 도저히 마무리 지을 수가 없을 때...

나는 사실 그런 부담감에 매우 취약한 편이라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 자체를 피했다. 

마감이 부담스럽지 않은 도전, 애초에 적당한 노력으로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현재는 큰 마감을 앞두고 작은 마감을 많이 하는 방법을 찾았다. 

작은 완성이 모여 조금 더 나은 큰 완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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