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든 영화든, 콘텐츠를 두 번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여러 번 보는 영화나 드라마, 책 등이 늘어나고 있다.
좋아하는 장면이나, 구절들이 문득 생각나면 다시 볼 수 있게 기록도 하고 저장해 둔다.
독서 모임을 하려고 신청을 했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취소를 했다.
하지만 모임을 위한 선정도서는 따로 읽었다. 양귀자의 '모순'도 그렇게 읽게 된 책이다.
'모순'은 10년 전 20대 초반쯤에 읽었던 책인데 마침 본가에 책이 남아 있어서 구매할 필요 없이 바로 읽었다.
여러 권의 선정 도서가 있었지만 워낙 처음 읽었을 때 기억이 좋아서 제일 먼저 읽고 싶었던 책이다.
모순은 안진진이라는 25살 여성의 삶을 통해 가족 관계, 사랑, 행복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두 번째 보면서 내가 왜 이 책을 좋아했는지 여러 번 느끼게 했던 부분들이 있다.
139p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더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
사실 이 구절은 아직까지 100% 이해가 안 되는 것 같다. 구절이 속한 이야기의 소제목이 '불행의 과장법'.
왠지 모르게 와닿고 내가 원하는 만큼 이해하고 공감했다.
돌아보면 나는 실패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작은 실패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멋있고 커다란 이상을 좇았고 그것들을 쫓다가 실패하는 건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 불행의 과장을 통해 자위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44p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주인공보다 어린 나이의 내가 주인공을 바라보던 시선과 10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안진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구나를
알 수 있었던 부분.
상대방을 최대한 솔직하게 대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예의이고 좋은 소통 방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큰 틀에서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흉기로 변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전달하는 타이밍이 나와 상대방이 다를 수 있는 것 같다. 감정 얘기를 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할 수 있기 때문에...
213p
"나는 이모의 넘쳐 나는 낭만에의 동경을 은근히 비난하는 쪽을 더 쉽게 선택하는 부류의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이모부 같은 사람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이모의 낭만성을 나무라는 것이 내게는 훨씬 쉽다.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
낭만성, 감성이나 공감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낭만, 감성이 통해서 너무 좋고 또 그것 때문에 답답하고 다툼도 크게 생길 수 있다. 낭만성이 강한 사람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지양하는 것 같다. 같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에서 본 내용을 공유할 때는 너무 좋지만 애인과 헤어지거나,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 후회, 원망으로 우울감에 빠지고 시종일관 부정적인 얘기를 쏟아낼 때면 옆에서 지켜보기 힘들 수밖에 없다. 힘들지만 낭만과 이성 사이에의 균형을 잃지 않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254p.
"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 버린 아버지처럼. 김장우에게도 알지 못하는 생의 다른 길이 운명적으로 예비되어 있을지 몰랐다. 지금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사랑조차도 넘쳐 버리면 차라리 모자라는 것보다 못한 일인 것을. "
너무 특별한 사랑이 무엇인가.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이 일어나는 세상인가. 사랑은 혼자할 수가 없다, 짝사랑도 대상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랑이 이뤄지게 하는 그 대상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내 마음인데 표현하는 건 자유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자기 마음에 취해 존중과 배려를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성장 과정에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에 대해 서툰 경우가 많다. 나는 이 구절에서 말하는 너무 특별한 사랑이 표현 방법을 모르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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